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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노트(Faith Notes)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by dj멀 202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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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23-27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전 세계에서 공은 잘 차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대회가 있는데, 이 대회를 월드컵이라고 부릅니다. 이 대회를 보면서 전 세계에 수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밤을 새며 열광을 합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대리 만족을 느끼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 많은 난관과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끝내 승리하여 기뻐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자신도 어떠한 짜릿함을 느끼기에 경기를 보며 손에 땀을 쥐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를 받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내가 이긴 것처럼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상급과 트로피는 선수들이 받는 것인데 말입니다. 바울이 살았던 시기에도 그리스에서는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경기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유명한 것이 올림픽이란 경기입니다.

 

운동장이라는 단어가 스테디움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스타디오란 단어에서 왔습니다. 스타디오란 약 200m 길위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것이 경기장이라는 뜻으로 굳어졌습니다.

 

당시 그리스 도시들의 경기장들이 200m로 규격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열광했던 경기가 어떠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바울은 24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육상 경기의 선수들의 모습을 비유로 들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상을 얻기 위해서 절제하고 인내하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월드컵은 내가 나가서 공을 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승리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상급과 면류관이 있다고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아무리 열심히 응원을 하고 해도 누가 인정해주는 것, 수고비 만원이라도 주는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자들에게는 영원하고 썩지 않고 빼았기지 않는 보상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절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5절 말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면 거의 고문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왜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절제하고 인내하며 채찍질하며 경기에 임할까요?

 

이기고 상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도 이 선수는 금메달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스스로를 자학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이 선수가 보는 금메달의 가치를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상급의 가치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의 수고와 희생을 비웃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나도 다른 사람의 믿음의 경주를 보면서 어리석어 보이고 가치 없어 보여서 비웃는 것은 아닌가? 그 이유는, 그 사람이 보는 면류관을 당신은 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께로 부터 상을 얻도록 뛰는 선수로, 전쟁에서 싸우는 전사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모르기에 뛰어야 할 시간에 싸워야 할 시간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얻기 위해서 세상의 것들을 버리는 것이 절제입니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 절제는 고문입니다. 그러나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서 먹지 않고, 오락과, 편안한 삶을 얻지 않는 것이 절제입니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선수 그 본인이 자원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고대 국가에서 개최되었던 올림픽 경기에서는 승자에게 월계수나 파슬리 잎을 엮어 만든 화환을 머리에 씌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나뭇잎을 엮어 만든 면류관은 최고의 영예를 상징하는 것이나, 금방 시드는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그것을 쓴 우승자의 영예 역시 덧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받게 될 면류관은 영원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썩어질 면류관을 얻고자 절제하는데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고자 한다면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과 설렘으로 절제를 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주님께 받을 상급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벅차 오릅니까?

요한계시록 410-11을 보면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24장로는 교회의 대표자들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주님 앞에 서게 되며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 할 때, 하나님의 보좌에 던질 면류관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승리하셨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라는 영광의 찬양과 함께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면류관을 다시 주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머리에 하나님께 돌려드릴 면류관이 있기를 소망하며 인내와 절제로 믿음의 경주에 임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상급은 각 개인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운동 경기는 슬프게도 1등만이 기억됩니다. 선수가 그렇게 남이 몰라주는 노력과 땀을 흘렸는데도 금메달을 걸지 못하면 그들의 노력과 수고는 보상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와 눈물과 남이 모르는 기도를 아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헌신과 노력은 분명하게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26절에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상급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썩어져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달리며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다다를 것이며 주님께서 보여주신 믿음의 경기 즉,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한 우리 앞의 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울 것이며, 죄의 사슬에 매인 영혼들을 구원하는 이 영적인 전쟁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수행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위해 자신을 처 복종시켜 구원 얻은 자로서 마땅히 주님을 섬기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함으로 노력하며 산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지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고통이 있습니까? 그 고통은 진짜입니다. 그래서 힘듭니다. 힘들어도 됩니다.

 

힘에 부치고, 허리가 휘는 고통 가운데 있다보면 소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것이 진짜 고통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얻은 소망은 누구도 무엇도 죽음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들게 짊어지고 가는 이유는,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주님께 올려드릴 면류관을 얻고자 함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오늘을 승리자로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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